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주차장 부지에 800호 규모의 공공주택이 들어선다. 서울시는 이곳을 포함한 도심 내 유휴부지를 택지로 활용해 1만4590호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안한 택지 8곳(4130호)을 포함하면 서울에선 32곳에서 1만8000여호가 새로 지어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건드리지 않고 상업지역 주거비율 확대 등으로 도심 내 주택공급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교통부가 19일 발표한 주택공급 계획안을 보면, 서울시는 은평구 수색역세권 등 32개 중소형 부지에 1만8720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시는 앞으로 용적률·용도지역 상향 등으로 3만5000호를 더 확보할 계획이다. 또 저층 주거지를 활성화하고, 재건축·재개발 시 기반시설 대신 임대주택을 짓는 방식으로 2022년까지 8만호를 공급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연내에 이번 방안의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 강남 노른자 땅도 포함
은평구에 위치한 수색역세권 부지(34만6000㎡)는 지난 1차 대책에서 발표된 성동구치소 부지(7만8758㎡)의 4배가 넘는 규모다. 이곳은 도심과 가까운 데다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실수요층을 끌어들이기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집값 급등의 진원지인 강남구에 있는 삼성동 서울의료원 주차장 부지도 개발 예정 32곳에 포함돼 이목을 끈다. 시유지인 이곳은 7000㎡ 규모로 지하철 2·9호선이 인접하고, 바로 앞에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자리한다. 강남구 대치동 동부도로사업소 부지도 관심이 쏠리는 곳이다. 이른바 ‘노른자 땅’도 포함되면서 서울 부동산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함께 브리핑을 한 박 시장은 “서울의료원 주차장 부지나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등은 서울시의 기존 부지 활용 계획을 변경하면서까지 이번 공급 계획에 포함한 곳”이라며 “주택시장 안정과 공급 확대라는 큰 방향을 위해 많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지난 9월 1차 주택공급 발표 당시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부지(1300호), 강남구 개포 재건마을(340호) 외에 밝히지 않은 개발지역 8곳도 이날 공개했다. 8곳은 서초 염곡(1300호), 도봉 창동(330호), 송파 장지차고지(570호), 강서 방화차고지(100호), 강동구 강일차고지(760호), 도봉구 성대야구장·노원구 광운역세권(4130호), 광진구 구의유수지(300호)다.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32곳의 중소형 부지에 1만8720호를 공급하는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32곳의 중소형 부지에 1만8720호를 공급하는 주택공급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 빈 빌딩·도로 위도 집
신규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그간 볼 수 없던 대책도 나왔다. 박 시장이 지난가을 유럽 순방 중 처음으로 공개한 도심의 빈 업무용 빌딩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아이디어는 이번 발표에서 처음 현실화했다. 서울시는 용산구의 한 공실 빌딩을 주택으로 바꿔 200호를, 종로구의 한 호텔을 전환해 260호를 만들겠다고 이날 밝혔다. 또 중랑구 북부간선도로 위에 인공지반을 조성한 뒤 주택을 올리는 구상도 나왔다.
서울시는 상업지역 내 주거 용도 비율을 80%에서 90%까지 높이고 주거용 공간 용적률도 400%에서 600%로 올리기로 했다. 준주거지역의 용적률도 임대주택을 일정 비율 이상 지을 경우 기존 400%에서 500%로 늘어난다. 이렇게 하면 추가 부지를 찾지 않고도 3만호가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서울시는 내다봤다. 박 시장은 “상업·준주거지역과 도심 정비사업구역의 주거 비율을 확대하고 역세권 용도지역을 상향하는 등 도심 내 고밀개발을 추진하고, 도심 내 빈 오피스를 주거로 전환하는 사업도 본격화하겠다”고 말했다.
■ 그린벨트는 사수
서울시는 이번에도 그린벨트 방어에 성공했다. 서울시가 용적률을 올리고 도심 내 유휴부지를 활용키로 한 것은 국토부의 그린벨트 해제 압박을 피하는 데도 유효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그린벨트보다 도시 인프라가 이미 깔려 있는 유휴부지를 활용하면 빠른 주택공급이 가능해 집값 안정 효과가 더 크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박 시장은 “ ‘양적 공급 위주’의 기존 주택공급 원칙을 바꿔 새로운 공공주택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며 “도로 상부 등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도 주택을 공급해 새로운 주거 트렌드를 선도하고, 저이용 공공부지나 공공시설을 복합화하는 혁신을 시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송파구와 강동구에서 단체장들이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지역 반발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이날 일부 자치구에선 서울시가 사전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부지를 결정한 데 대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안정이라는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점과 미래세대 자산인 그린벨트를 지켜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 사이에서 적잖은 부담이 있었다”면서 “시민들과 약속한 주택 물량도 확보하고 그린벨트도 지켰다는 점에서 ‘윈윈’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